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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4] 우후지실(雨後地實), 3X3 국가대표 김동우
매거진농구인생
2021.08.2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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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농구인생' 20년 3월호 내용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청주 드림팀바스켓볼 농구교실 원장이자 3X3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우입니다.

굉장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실 것 같은데,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최근에는 계속 3X3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면서 지냈어요. 지금은 발표만 기다리고 있습니다.(인터뷰 이후 그는 노승준, 박민수, 이승준 선수와 함께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농구교실 원장님으로서 학생들도 지도하시잖아요.

평일에는 엘리트 선수들 개인 레슨, 성인반 레슨을 하고 있고 주말에는 취미반 학생들을 레슨하고 있어요.

농구교실 원장님, 3X3 선수는 물론 유튜브 '뽈인러브' 채널에도 출연하시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세요.

제가 농구교실을 하고 있으니까 저를 좀 더 알리면 좋을 것 같아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웃음) 아이들도 신기해하더라고요. 금요일에 '뽈인러브' 영상이 올라오면 그걸 보고 바로 다음 날 수업에서 저를 보니까 신기한가 봐요.(웃음)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으시겠어요.(웃음)

진짜 엄청 부담돼요. 중학생 친구들은 왜 그렇게 했냐고 좀 더 잘해야 한다고 말도 해주고 그러거든요.(웃음)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3X3 선수 중 한 명이신데, 처음에 농구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선수들 대부분이 비슷할 것 같은데, 선생님의 권유로 농구를 시작했어요. 저희 학교에는 여자 농구부만 있었고 저는 육상부였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체육관 청소하다가 코치님께 발탁이 돼서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에 키가 큰 편이셨나요?

키가 되게 작았어요. 중학교 때까지 후배들보다 작았는데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20cm가 컸죠. 중학교 때 키가 작아서 농구를 그만두기도 했었어요.

스스로 농구를 그만두셨던 건가요?

네. 농구가 좋고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었는데, 한계가 명확히 보이기도 했고 그만둘 때쯤에는 농구가 너무 싫었어요. 그만두고 나서 농구 생각은 아예 안 했었는데 갑자기 키가 컸죠.(웃음)

그럼 어떻게 다시 농구를 시작하신 건가요?

저는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부모님 심부름으로 농협에 돈 뽑으러 갔다가 고등학교 코치님을 만났어요.(웃음) 왜 이렇게 키가 컸냐고 물으시면서 농구를 다시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우연히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농구공을 다시 잡았을 때는 어떤 느낌이셨나요?

마냥 좋았어요. 키가 20cm나 컸으니까 기대가 됐죠. 작았을 때는 빠르고 슛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스피드와 슛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했었는데, 키가 크니까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지잖아요. 스스로도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작았을 때랑 비교하면 자신감 차이가 엄청 컸죠. 

갑자기 키가 커서 다시 돌아온 거니까 함께 농구를 하던 선수들이 굉장히 놀랐을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앞으로 더 클 것 같으니까 운동 끝나면 빨리 자라고 하고.(웃음)

상주에서 보낸 중,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으세요?

농구를 못 해서 계속 상주에서 있었는데.(웃음)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잘하거나 주목을 받는 선수가 아니었어요. 그냥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만 했던 것 같아요.

상주상산고 졸업 이후에는 조선대학교에 입학하셨어요.

가고 싶은 대학은 많았는데 실력이 안 돼서 조선대에 가게 됐죠. 그렇지만 조선대에서 1학년 때부터 많은 기회를 주셔서 4년 내내 꾸준히 경기를 뛰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4학년 때는 대학리그 득점 부문에서 2위에 오르는 등 뛰어난 득점력으로 주목을 많이 받으셨잖아요. 

대학교 때는 자신감이 넘쳤어요. 누가 막든 20점은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팀에서 많이 밀어주기도 했고요. 편하게 농구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조선대가 강팀이 아니다 보니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가 많았잖아요. 약팀으로서의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진짜 무서운 게 계속 지다 보니까 지는 거에 익숙해지더라고요. 지는 게 그냥 일상이 되는 거죠. 경기에서 져도 광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냥 평상시처럼 웃고 떠들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농구 외적인 대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놀 때는 굉장히 잘 놀았던 것 같아요.(웃음) 운동할 때는 운동하고 놀 때는 놀고. 근데 저는 운동할 때도 좀 많이 놀았던 것 같아요.(웃음)

예전 대학농구리그 시상식 사진을 보면 잘 놀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어요.(웃음)

제가 상주에서만 자란 촌놈이라 옷 입거나 꾸미는 걸 잘 몰랐어요. 그런데 선배들이 "그렇게 입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맨날 잔소리를 해서 많이 고쳤는데, 그때도 시상식이라고 해서 옷도 직접 사고 머리도 세팅했는데 김무스 머리라고 해서 기사가 난 거죠. 흑역사죠.(웃음)

조선대 졸업 이후에는 KBL 2군 드래프트를 통해 전주 KCC에 입단하셨어요.

솔직하게 1군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나 3라운드에 뽑힐 줄 알았어요. 개인기록도 나쁘지 않았고 자신감도 있었는데 제 이름이 불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드래프트장을 나가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응원해주신 부모님과 주변분들 생각이 나서 2군 드래프트를 신청했죠. 열심히 해서 1군으로 올라가자는 마음이었지만 실망감도 컸고 속상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약 6개월 만에 프로 생활을 그만두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1, 2군 왔다 갔다 하면서 운동을 하고 프로아마최강전에 출전을 하기도 했는데, 문득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에 한번 빠지기 시작하니까 운동만 끝나면 계속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결국 군대를 빨리 다녀와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코치님께 그만두겠다고 말씀을 드렸죠.  

평생 프로선수의 꿈을 갖고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만둔다는 결정을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모두 반대했죠. 잘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해보라고, 왜 지금 와서 그만두냐고 말씀하셨는데 이미 제가 마음을 굳힌 상태였기 때문에 "군대 다녀와서 다른 길을 찾아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군대에 가게 됐죠.

일반 병사로 입대를 해서 군 생활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군 생활은 어떠셨나요?

엄청 쉬웠어요. 어렸을 때부터 합숙 훈련을 하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집에 못 가는 것도 익숙했고, 제가 선배들한테 했던 거 반만해도 선임들이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또 농구 리그가 있었는데, 전경기 심판을 보면서 분기마다 포상 휴가를 받기도 했고요.

전역 이후에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선수들을 지도하는 건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전역이 다가오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까지 농구밖에 안 했는데 나가면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다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운동할 때도 가끔 '운동 그만두면 뭘 하지?'라는 생각을 했을 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처음에는 대구에서 아는 지인분 밑에서 일을 하면서 경력과 노하우를 쌓았죠. 그리고 청주로 가서 지금의 드림팀바스켓볼 농구교실을 열게 됐죠.

처음 아이들을 지도하실 때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제가 엘리트 운동을 해서 눈이 너무 높아져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왜 이것도 못 하냐고 다그치기만 했었는데 어느 순간 '이 친구들은 학업 스트레스를 받다가 주말에 스트레스를 풀러 농구를 하러 오는 건데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잘못된 거잖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본기는 충실히 하되 조금 더 재미있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농구교실을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체육관에 화재가 난 일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정확히 2월 10일이었어요. 자고 일어났는데 부재중 전화가 몇백 통이 와있더라고요. 제가 잘 때는 무음으로 해놓고 자거든요.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전화를 거니까 체육관에 불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체육관으로 달려갔는데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연기랑 소방차가 보이고, 진짜 멍하더라고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진짜 다 끝났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 결국은 어려움을 극복하시고 다시 시작하셨어요.

일단 수업이 문제였어요. 제가 밖에서라도 수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부모님들은 당연히 싫어하시잖아요. 체육관에서 하다가 갑자기 야외코트에서 한다고 하니까. 지인분을 통해서 소개받은 체육관을 경비 아저씨 눈치 보면서 몰래 쓰기도 하고, 정말 힘들었죠. 학원이 정상화되기까지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학생들도 많이 떠났었고, 그때가 정말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전보다 학생 수도 더 늘어나고 활발히 운영을 하고 계신데, 원장님으로서의 지도 철학도 궁금해요.

제가 가장 강조하는 건 예의에요. 인사 같은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중요시하고 농구적인 부분에서는 코트 위에서 다 같이 열심히 뛰는 걸 강조하고 있어요. 기술적인 부분은 제가 알려주면 되니까요.

사실 농구교실 원장님보다는 3X3 선수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처음에 3X3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2017년도였나? 대구 코리아 투어 대회 때 (한)준혁이랑 연이 닿아서 같이 운동했던 선배들이랑 재미로 나갔었거든요. 공격 시간도 짧고 몸싸움도 거칠고 재미있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우승까지 해서 '이거 계속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작년 4월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면서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었는데 당시의 기억은 어떠세요?

정말 엄청 좋았죠.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운동했던 걸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사실 부담도 많이 됐어요. 운동을 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거나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는데 국가대표가 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으니까 부담이 되더라고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요? 사실 기대만큼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셨어요.

처음으로 국제 대회에 국가대표로서 나간 거라 솔직히 긴장을 많이 했어요. 제 기량을 많이 못 보여줬죠. 그냥 정신없이 경기하다가 온 기억밖에 없어요. 이후에 월드컵을 못 가게 되었을 때는 '나는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래도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3X3 랭킹 1위의 자리까지 오르셨잖아요.

당시 '무쏘' 팀에 부상 선수가 많아서 경기를 뛸 선수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나가서 경기를 했는데,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승부욕이 생기고 힘든 걸 이겨냈던 것 같아요. 아픔을 겪고 나니까 멘탈적으로나 실력적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더 자신감 있게 플레이하고 슛을 쏘면서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1위에 올랐을 때 정말 좋았는데, 좋은 건 잠깐이었어요. 다음 경기가 걱정되더라고요. 1위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못 보여주면 안될 것 같아서 혼자 준비를 많이 했었죠.

현재 3X3 선수 중 슈터의 자리는 김동우, 김민섭, 박래훈 선수의 3파전인 것 같아요. 

저는 영광이죠. 민섭이 형이나 래훈이 형 모두 프로에서 오래 선수 생활을 했던 선수들이고 농구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저는 알려진 선수도 아니었는데 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게 스스로가 대견하죠. 뿌듯하기도 하고요.

김동우 선수만의 슛 비법을 하나 알려주신다면.

슛은 자신감인 것 같아요. 연습은 다들 똑같이 하잖아요. 자기만의 방법으로 모두가 열심히 하는데, 경기장에 들어갔을 때 자신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최근 있었던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 국가대표 선발전은 어떠셨나요?

체력 테스트로 셔틀런을 했는데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뛰는데 하체가 진짜 막.(웃음) 두 번을 뛰었는데 두 번째는 진짜 똥 쌀뻔했어요.(웃음) 경기도 하필 첫 경기가 잡혀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른 선수들도 다 허벅지만 부여잡고 있더라고요. 다들 같은 여건에서 하는 거니까 후회 없이 열심히만 하자고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었죠.

3X3 선수는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시간을 내 운동을 하고 대회에 참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힘든 점이 많으실 것 같아요. 

솔직히 힘든 점이 많죠.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서 공을 자주 만진다고 하지만, 경기에서 사용하는 건 아이들이 사용하는 공과는 다르잖아요.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연습을 해야 하고 또 혼자 해야 하니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선수들 대부분 수도권지역에 있는데 저만 지방에 내려와 있다 보니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든 부분이 있죠.

3X3 선수로서 김동우 선수의 장점과 단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장점은 디펜스? 3X3가 거칠잖아요. 그동안 제 나름의 요령이 생겨서 파울 없이 거칠게 하는 수비를 터득한 것 같아요. 반대로 약점은 슈팅력이라고 생각해요. 폭발력은 있지만 정교함이 떨어져서, 꾸준히 넣을 수 있도록 더 정교하게 쏴야 할 것 같아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최근 대외적인 활동도 많이 보여주고 계세요.

저한테는 너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계속 참여하려고 해요. 아이들도 좋아하고 저도 홍보가 되니까 좋은 것 같아요. 재미있기도 하고요. 

홍대부고 박무빈 선수와의 1대1 경기는 저도 굉장히 인상 깊게 봤어요.(웃음)

여파가 컸죠. 다들 학원 옮긴다고 하고, 박무빈 선수한테 가서 배운다고 하고.(웃음) 애들이 선생님이 농구 제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어떻게 지냐고 그러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농구를 한다는 부담감이나 어려움은 없으세요?

제가 평소에는 약간 거만한 캐릭터거든요.(웃음) 근데 카메라 앞에서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저를 잘 아시는 분들은 촬영 가서도 거만하게 하라고, 왜 바보같이 뒤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냐고 말씀하시는데 아직은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올해의 목표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도 궁금해요.

올해는 국가대표가 되는 게 첫 번째 목표였어요. 지금은 국가대표만 바라보고 있고, 장기적인 목표는 앞으로 저희 학원이 대외적인 활동을 좀 더 하는 거예요. 아이들 데리고 대회나 3X3 경기 등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해보려고 해요. 

김동우 선수의 농구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파도'. 높이 올라갔다가 한 번에 밑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계속 업다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파도라고 하고 싶어요. (지금은 높이 올라가신 거겠죠?) 국가대표가 된다면 정말 높은 곳까지 간 거죠. 앞으로 이 높이를 잘 유지해야죠.(웃음)

가르치고 계신 아이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뭐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부모님들께서 제가 계속 국가대표에 도전하는 모습이 애들한테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씀해주시거든요.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아이들에게도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하고 계속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먼저 저와 함께 농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 전재우 부원장님. 제가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아서 혼자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 자리를 빌려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여자친구. 제가 운동하느라 데이트도 많이 못 하는데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잘해줘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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